털며 간다
산유
‘털며’의 원형 ‘턴다’의 기본 의미는 ‘달린 것, 붙어 있는 것 따위가 떨어지게 흔들거나 치거나 하다. 또는 일, 감정, 병 따위를 완전히 극복하거나 말끔히 정리한다’(나무위키)이다. 마음이 되었든 호주머니가 되었든 붙어있는 것을 말끔히 정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백 퍼센트 ‘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에 따라서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 여정 가운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나 자신의 약함은 물론, 냄새나고 비뚤어진 꼬챙이들로 인하여 울며불며 난리 칠 때도 있었음을 기억한다. 어떤 일로 안절부절못하여 상대방까지 못살게 굴었던 때는 어떻고? 이때 깨닫는 것이 있다. 사람이 바뀌기 위해 전환점이 있어져야 한다는 것을, 그렇다고 모든 이가 어떤 계기를 꼭 맞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가 있었기에, 그리고 넘었기에 그 자리에 새로운 꿈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조금씩 털며 가는 그 자리에 ‘꿈’을 채운다. 꿈이라 하여 거창할 필요는 없다. 나의 꿈은 움푹 지 푹한 여정 가운데서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도록 한몫을 단단히 했다. 쓰러짐에서 일어나게 했고, 앞으로 나가게 했으며, 뒤를 돌아보되 묻어야 할 것, 취해야 할 것 등,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했다. 꿈의 조각들이 조금씩 맞추어가는 시간이었다.
이 꿈을 가지기 위해 제일 먼저 깨달은 것은, 나의 재능이 무엇인지 세어보는 것이었다. 남이 가질 수 없는 나만의 독특한 재능, 내가 믿기로는 최소한 열 가지 이상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열 가지 너머의 재능이 있음을 모두가 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재능을 앞으로 어떻게 쓸 것인지, 나만을 위하여,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위하여, 아니면 내 모든 이웃을 위하여?
나의 꿈은, 내가 머물면서 아둥바둥 살았던 그 자리에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내는 것이었다. 유명세를 뗀 사람들은 이름을 남긴다지만, 나에게는 이름 모르는 꽃이라 하더라도, 돌멩이에 가려 얼굴만 삐쭉 내민 잡초라 하더라도, 나의 흔적을 따라 무엇인가가 자라고 피워진다면, 그게 아름다운 꽃이고 내 꿈의 완성이다. 확신하고 믿기는, 나의 자취가 나의 이름이 나의 존재가 그냥 헛되지 않고 어딘가에서 무엇으로 결실을 보았을 거라는 것이다. 내가 눈으로 확인할 필요는 없다. 내가 지나온, 그곳에 머물렀던 자리를 훌훌 털며 일어섰기에, 나의 눈물과 땀, 온기와 한숨이 노래가 되어, 땅이 조금씩 열리고 햇빛이 화답하며 꿈이 실현된 것이다.
지금도 알게 모르게 꿈의 갈래들은 펼쳐가고 있다. 계속 훌훌 털며 꿈들을 향하여 나간다. 머물러 있지 않고 털며 나가므로 꿈이 채워진다. 그 빈 자리에서 솟아오르는 꽃망울을 본다.
오늘도 털며 가는 자리에 나의 꿈을 얹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