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후손의 변론/ 꽁트
산유
저는 노아의 후손 빌브일(혼란: 히브리어)입니다. 오늘까지도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신과 같이 높아지려는 마음에 하늘까지 탑을 쌓아갔다는, 결국에는 벌을 받아 언어의 혼란으로 완성을 못 하고 그들의 민족이 흩어졌다는 내용입니다. 이때 부쳐진 이름이 ‘바벨’ -대혼란 - 이지요.
제 이름이 ‘혼란'인 것만 보아도, 그 당시 사건이 얼마나 트라우마였는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제 부모님이 더 이상의 혼란은 없어야 한다고 하시며, 혼란은 기억하되 이 혼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라는 마음에 제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기억하고 겸손하라, 그렇지만 어떤 도시를 짓고, 너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싶으면 너의 능력껏 하거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열린 마음입니까? 저의 부모님은 인간의 한계를 알고 계셨습니다. 아무리 어찌고저쩌고한다 해도 신보다는 높아질 수 없다는 걸 아신 거지요. 요즈음 일부 신학자들 역시 세상이 알고 있는 바벨탑에 대하여 조금 다른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것도 보곤 합니다.
어쨌든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Come now let us reason together,” says the Lord(Isa 1:18a NIV)에 용기를 얻어, 하늘과 땅의 주인(이하 하땅주)에게 몇 가지 변론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다 잘했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무지한 마음에서 일어난 일들이, 어쩌면 하땅주를 놀라게 해서 바벨이 일어난 건 아닌지, 저 역시도 속상한 마음에 이렇게 나왔습니다.
하땅주는 우리 선조들이 왜 성읍을 짓고 탑을 쌓으려했는지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으시고 내려오시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창11:5)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The Lord said, “If as one people speaking the same language they have begun to do this, then nothing they plan to do will be impossible for them’(Gen 11:6,7 NIV) 그러면서 언어를 교란해 더 이상 탑을 쌓지 못하게 하고 저의 민족을 흩으셨습니다.
좋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신 하땅주의 지시를 저도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흩는다는 것은 또 다르게 말하면 번성하는 거라고도 이해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흩으시면서 언어까지 교란하신 것은 너무나 큰 벌이었습니다. 언어의 혼란은 재앙이었습니다. 오순절 다락방(Act 2:4,6)이 아니고서는 다른 나라 언어로 말하는 걸 우리가 들을 수가 없지요. 하땅주는 이때를 기억하여, ‘바벨'이라는 이름으로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 기록하여 후세들에게 교훈을 주시는 거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That is why it was called Babel - because there the Lord confused the language of the whole world. From there the Lord scattered them over the face of the whole earth.’(Gen11:9 NIV)
저의 선조는 그 당시에 교육을 못 받았습니다. 읽을 수도 없었고, 특별한 사람만이 적을 수 있는 글자 역시 읽고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저희는 지금까지 듣고 자라왔으므로 우리 스스로가 책이 되었고, 글이 되었고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 시날 평지는 울타리가 없습니다. 동물들이 아무 때고 저희 사는 곳에 와서 우리가 먹는 밥도 훔쳐 가고 우리가 기르던 닭도 가져가고, 번거로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벽돌을 만들어 돌을 대신하였고,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며 울타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They said to each other, “Come, let’s make bricks and bake them thoroughly.” They used brick instead of stone, and tar for mortar’(Gen 11:3 NIV).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때 저희 교통편은 고작 낙타였습니다. 지금같이 비행기도 없었고, 자동차는 물론 열차도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손녀 생일이 다음 달인데, 벽돌로 만들기 시작한 ‘분홍색 바비 집’을 가져다줄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한번 떠나면 일주일 정도 머물러야 하는데, 저의 남편은 골프 세트를 가지고 가서 치겠다 하고, 저는 창 던지기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종류별로 5개 정도 가져가야 하고, 두 사람 소지품을 더하다 보니 엄청난 부피가 되었습니다. 한꺼번에 원하는 거 어떻게 다 가지고 갈 수 있겠습니까?
몇 달을 끙끙 앓다가 가까운 친척들 불러 의논했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들이 나왔습니다. 그중에 저희가 채택한 것은, 한국같이 좁은 땅에 많은 족속이 사는 것은 아니지만, 빌딩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도시 개혁이라고 해야 하나요? 땅은 충분했기에 부족별로 도시를 만들고 빌딩을 쌓아 올려 우리의 이름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Then they said, “Come, let us build ourselves a city, with a tower that reaches to the heavens, so that we may make a name for ourselves and not be scattered over the face of the whole earth.’(Gen 11:4 NIV) 이때 절대로 하땅주보다 높아지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자가라트 같은 피라미드 성전, 잘 아시지요?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을 만들어서 우리가 하땅주 같이 되려고 하는 건 절대 아니었습니다. 단지, 우리가 어디 사는지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서로를 찾는데 쉬울 거 같았습니다. 우리의 이름, 각각 부족의 이름을 밖에 써서 알리고 싶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계획하다 보니 탑이 하늘로 높이 쌓아 갔습니다. 동시에 서로에게 편리한 점이 많을 거 같았습니다. 언제고 오르며 내리며 손자 손녀 볼 수 있겠고, 어르신들 집에 모시고 잔치도 할 수 있겠고, 시편을 서로 나누며 그룹별로 이야기도 할 수 있겠고요. 언어가 하나고 말이 하나, 거기에 같은 빌딩에 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의견입니까? 같은 부족끼리 흩어져 사는 거 이제 그만하고 싶었습니다.
결정된 대로 성읍을 짓고 타워를 높이 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날 우리 노아 조상님을 이 세상에 살게 하신 하땅주가 몇분과 함께 저희 일하는 것을 보시러 내려왔습니다. 그러고는 우리가 하는 일에 불안했던 거 같아요. 하는 꼴을 보니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또 벌일지 걱정도 되었나 봐요. 우리를 믿지 못하신 거지요. 우리한테 변명의 시간도 주지 않고, 자초지종 우리한테 왜 이렇게 일을 시작했느냐 물어보지도 않으시고, 언어가 똑같아서 이렇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면서 언어를 혼잡하게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The Lord said, “If as one people speaking the same language they have begun to do this, then nothing they plan to do will be impossible for them’ (Gen11:6 NIV)
그러다 보니, 서로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벽돌을 가져오라 하는데 아래쪽으로 내려가서는 올라올 생각을 안 한다든지, 유리창을 만들자 하는데 역청으로 입구를 발라 버린다든지… 일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도시 건설과 탑 쌓는 걸 그쳐야 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온 지면에 흐트러져 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흩트려 살 때는 그나마 한가지 언어로서 교통은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같은 조상의 민족이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여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손짓발짓으로 몸으로 말하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가족들은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지요? 이런 중에도 하땅주는 저희에게 조금의 숨 쉴 구멍은 내주셨습니다. 가족끼리는 대화할 수 있었지요. 이게 어쩌면 그분이 저의 노아 자손에게 주신 크신 사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 당시 우리의 좁은 소견으로, 하늘 향해 올라가며 도시를 짓는다, 타워를 건설한다, 야단법석 떤 거 죄송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때 하땅주 위에 올라서려고 했던 마음이 완전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세상에 보이므로 잘남을 과시하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 역시, 완전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너무 못된 인간의 습성이 악마의 꾀임에 잘못 엮여 제정신이 아녔던 거 같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한 마음과 함께 용서를 구합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한 언어로 말하고 교통할 수 있게 해주시면, 이 언어로 이웃들과 친절하게 베풀며 살겠습니다. 흐트러져 사는 거 이제 싫습니다. 우리 노아 자손들이 어디까지, 언제까지 흩어져 살아야 하겠습니까? 의롭다고 하셨던 노아를 생각하시어, 우리의 선조- 셈, 함, 야벳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온 땅에 살 수 있도록 노아 자손을 축복하셨으니,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길 바랍니다.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These were the three sons of Noah, and from them came the people who were scattered over the earth’ (Gen9:19 NIV) 지금 세대가 다양한 민족, 문화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언어가 다른 곳에서 살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햄버거 가게 들어가서 뭐 하나 주문하는 것도 엄청 힘들었습니다.
이 변론의 자리에서 너그럽게 모든 것 용서하시고, 혼란을 축복으로 바꾸시어 한 언어, 한 풍습으로 살 수 있도록, ‘말씀으로 창조’하신 그 말씀 부탁드립니다. 혹 지금에 와서 너무 늦었다면, 최소한 국제통용어인 영어라도, 제 민족 언어와 같이 그 영어를 잘할 수 있도록, 선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