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냄새
(나의 의견/ 한국일보 2020-02-14)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새 역사를 기록한 ‘기생충’. 오스카 4관왕-작품상, 감독상, 국제 영화상, 각본상을 받고 봉준호가 이야기한다. “텍사스 전기톱으로 트로피를 나눠 갖고 싶다.” 전기톱이라 하니 조금은 오싹한 느낌이 들지만 그의 작품 ‘괴물’을 보았던 필자로는 그럴 만하다고 느낀다. 그는 대립하는 두 가지 내용을 잘 버무려 관중들에게 여러 가지 흥미를 자아내게 한다.
‘괴물’에서 제일 마지막에 살아남은 자들이 무미건조하게 라면을 먹는 부분이 있다. 이 장면을 보는 관중들은 라면의 냄새를 맡으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기생충’은 부와 가난의 냄새를 거론한다. 반지하에서 살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면 변기에서 오물이 폭발하는, 술 취한 자가 실례하는 그 냄새까지 다 안으며 살아가야 하는 한 가족 이야기. 목욕을 자주 한다 해도, 새 옷을 입는다 해도 없어지지 않는 찌들어진 냄새. 이 냄새는 모멸감으로 기택(송강호)에게 자리하게 된다.
냄새는 상품에서도 맡게 된다. 유명 메이커 가방에서 맡아지는 냄새는, 장신구가 쉽게 떨어지고 지퍼가 그다음 날 고장 나는 싸구려 가방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다. 패션이 그렇고, 살고 있는 집이 그렇고, 사회적으로 가지고 있는 명성 또한 그렇다. 자칫 좋은 냄새를 가지지 못한 자들은 ‘기생충’의 기택같이 모멸감을 가질 수도 있다. 아니,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자기 냄새와 더불어 자신 있게 살아가고 있는 자들도 많다.
시어머님이 이번 팔월이면 구십이 되신다. 한번씩 같이 외출을 하노라면 품어내는 향수가 너무 진하다, 그렇다고 뭐라고 말할 수도 없는 처지. 나이에서 풍기는 냄새를 조금은 바꾸어 보고자 하시는 게다.
냄새는 천차만별이다. 한편에서는 고등어, 생선, 김치, 된장, 육개장, 라면 냄새, 다른 편에서는 스테이크, 파스타, 피자, 버터에 새우가 조합된 냄새,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유명 브랜드 이름으로 매사에 자신 있게 걸어가는 냄새, 렌트비에 학자금 독촉에 아이들 비용이 재촉하는 냄새, 하얀 머리 꼭꼭 숨어라 염색하는 냄새, 노인 냄새 없애려 안절부절못하는 냄새….
우리 교회 성가대에는 원칙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모든 종류의 냄새는 제거하고 앉으라.’라는 것이다. 향수는 물론 향이 있는 로션과 샴푸 등을 금지하고 있다. 아무런 냄새를 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차라리 냄새 없는 것이 힘든 냄새를 풍기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가난의 냄새가 모멸감이 아닌, 가난과 부가 잘 버무려진 다른 이름은 없을까? 가진 거 없지만, 유명 브랜드가 아니지만, 그럴듯한 냄새로 공동체에 자신을 품어낼 수는 없을까? 서로가 가지고 있는 냄새를 존중할 수는 없는가? 굳이 모방과 악착으로 상대방의 냄새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하는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서로 다른 냄새와 더불어 또 다른 냄새 만들기에 바쁘게 한다.